“솔직히 말하면, 대학교 그만두고 싶어요.”
상담이 깊어지자 J가 말했다. 남들이 다들 좋다고 하는 과정을 거쳐 좋다고 하는 대학교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이렇게 하면 좋을 거라고 해서 도착한 목적지인데 J는 즐겁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만두기는 두려웠다. 지금의 트랙에서 벗어나면 낙오자가 될 것 같았다. 이런 얘기까지 털어놓게 될 줄 J는 몰랐다. 영양실조가 염려되는 저체중과 생리 중단이 걱정되어 어머니의 권고로 한의원에 왔을 뿐이었다. 내키지 않는 걸음이었고 마음은 무거웠다. 과식해서 체하거나 접질러서 발목을 삐었다면 침을 놓고 며칠 분의 한약을 처방하면 된다. 그러나 때로 병의 원인을 치료하려면 속 깊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동물학자들이 한 어떤 실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새둥지가 많은 정글에서 천적의 소리를 들려주며 새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다. 새들은 실제 천적의 모습이 보이지 않음에도 오디오로 들려오는 소리만으로 몹시 불안해했다. 알을 낳는 개수도 줄어들고 새끼들의 발육 상태도 좋지 않아 제대로 성장하는 새끼가 적었다. 어미들의 영양 상태와 면역력도 좋지 않았다. 불안감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짐작해볼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여섯 가지 핵심 감정 중에서 불안감을 생존과 직결되는 원초적인 감정으로 본다. 불안은 생명 유지 기능이 발달된 가장 원시적인 뇌가 있는 파충류에게도 있는 감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두려움과 불안을 조성하는 것이다. 신문 포털의 머리기사들이 모두 안 좋은 소식이고, 병원에 가면 보험 광고만 보이는 까닭이다. 그러나 그런 소리들에 현혹되면 소리만 듣고도 천적이 주변에 있는 줄 알고 불안해하는 새들처럼 되기 쉽다. 불안해서 음식도 넘어가지 않고 배변도 되지 않는다. 영양상태가 좋지 않으니 자연히 생식 활동도 저하된다.
그러나 이것들은 실제 있는 위험이 아니다. 뉴스와 포털 기사들이 자극적이고 험악한 소식들로 시끄럽더라도 내가 폰을 열지 않고 클릭하지 않으면 우리의 일상은 평온하다. 다들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나를 대하고 심각한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나는 J에게 주변의 소리를 끄고 자신에게 귀 기울이기를 권하며,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물었다.
아기 때 우리에게는 취향이 없었다. 오감조차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상태라 색을 구분해서 볼 줄 모른다. 신생아들의 요람에 처음에는 크기가 큰 흑백 모빌을 매달아주고 한참 후에야 색깔이 있는 모빌로 바꿔주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유식을 통해 맛을 익힐 때까지는 맛도 모른다. 이유식 시기에 한약을 먹어본 아기들은 성장한 뒤에도 한약을 잘 먹는다. 반면 이유식 시기에 접하지 않은 음식을 나중에 접하면 아기는 먹기 싫다고 고개를 돌린다. 이렇게 음식에 대한 취향이 생긴다.
조금 더 자라면 색깔에 대한 취향을 옷에 드러낸다. 초등학생이 되면 입기 싫어하는 옷과 좋아하는 옷을 구분한다. 중학생이 되면 소리, 즉 음악에 대한 취향이 생긴다. 우리는 이렇게 생기는 취향이 서로 다름을 당연하게 여긴다. 짜장면을 좋아함이 옳은지, 짬뽕을 좋아함이 옳은지 논리적으로 증명하지 않는다.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다른 옷을 입고 있지만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우연히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면 어색하다.
그렇다면 배움에 대한 취향은 어떨까? 그림을 그릴 때, 빨간색 계열로만 그리거나 파란색 계열로만 그려야 한다면 어떨 것 같은가? 단조롭고 재미도 없을 것이다. 다양한 색깔로 그려야 그리는 재미가 난다. 그런데 세상의 지식을 문과, 이과로 나눔이 과연 자연스러울까? 나는 이과로 가기에는 문과 성향이 강했고, 문과로 가기에는 이과 성향이 강했다. 하지만 고교 때 이과로 진학했고, 대학에서는 생물을 전공했다. 같은 전공을 공부한 이들 중에 전공과 관련된 직업을 갖는 이들은 무척 적었다. ‘어차피 전공과 상관없이 산다면 왜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거지?’라는 의문이 생겼다.
이후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스스로에게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고 질문했다. 남이 짜장을 먹든 짬뽕을 먹든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바를 살폈다. 짜장과 짬뽕을 반 그릇씩 담아주는 짬짜면도 있지 않은가. 상상해보자. 모처럼 중국집에서 마음껏 주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수많은 요리들을 제쳐놓고 짬뽕과 짜장면 중에서만 고른다면 아쉽지 않겠는가. 나는 사실 크림새우를 좋아하는데 말이다. 나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서야 내 한 번뿐인 인생과 나의 취향에 대해 고민했다. 선택을 바꾸기 위한 대가들을 오랫동안 감수하고 한의사가 되었다. 진료에도 내 성향이 드러나다 보니 일반 진료를 함에도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분들이 많이 내원한다. 그리고 나는 이를 즐긴다.
J는 나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이를 눈치챘다. 짬뽕과 짜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그녀의 얼굴이 확 펴졌다. 나는 J에게 지금 서 있던 곳이 외줄이 아니었음을,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발을 옆으로 내딛으면 낭떠러지로 떨어짐이 아니라 다른 길을 걷게 됨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켜는 주변의 오디오를 차단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상담하기로 했다. J가 웃는 얼굴로 나가자 한의원 직원분들이 놀라워하며 대기실에 피어 있는 수선화보다 아름답다고 말해주었다.
상담 받는 동안에는 편안하지만 집에 돌아가면 다시 주변의 소리에 흔들리기 쉽다. J에게는 내가 해준 것처럼 ‘다른 길을 걸어도 괜찮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는 말이 필요했다. J에게 법륜 스님의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를 주며 매일 한 꼭지씩만 읽기를 권했다.
얼마 뒤 J는 대학을 자퇴했다. 자퇴하고 나니 무척 홀가분하다며 기뻐했다. 배변도 원활해지고 소화도 잘 된다고 했다. J는 남의 인생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살기로 선택했다. 상담을 진행하며 J는 하고 싶은 공부가 생겼다고 했다. 놀랍게도 자신이 가장 못하고 싫어하는 과목이었는데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고 했다.
J는 직업(職業)에 대해서도 직(職)과 업(業)을 분리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변화 속도가 빠른 사회에서는 직종이 빠르게 사라지고 새로 생겨난다. 마차를 끄는 마부는 사라지고 운전사와 비행사가 생겨났다. 마부라는 직만 생각하면 직업이 사라진 것이지만, 무언가를 타고 돌아다닌다는 업에 대한 취향으로 찾는다면 운전사나 비행사가 되는 기회를 맞이한다. ‘남에게 가르치기를 좋아한다’라는 자신의 취향을 알고 이를 업으로 삼으면 선생님, 상담사, 강연가, 통역사, 가이드 등 다양한 직군을 떠올릴 수 있다.
상담을 마친 J는 꽃놀이를 간다고 했다. 자신의 새로운 목표를 향해 일주일을 충실히 살고, 상담하는 날은 재충전의 시간이라고 했다. 지난 일주일도 즐거웠고 오늘도 즐겁다고 했다. 봄을, 인생을 즐기고 있다. 이제 J는 신이 난다. 나도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