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침에 창문을 열면 파란 바다가 보이는 제주의 한적한 마을에서 디지털노마드로 살아가고 있다. 일출과 일몰이 그려주는 그림은 매일 다르기에 늘 자연의 선물에 경외감과 감사함을 누리고 있다. 종교의 프레임을 떠나 영성의 세계에 입문했던 10년 전, “나에게 올바른 장소에서, 나에게 올바른 사람과 살아갈 거야”라고 했던 선언이 오늘 이 아침을 만들었다.
의식 성장의 삶을 추구하는 이들에겐 자신을 정렬하는 각자만의 행위가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한데, 집 마당의 둘레를 따라 걸으면 딱 108보가 나온다. 매일 아침 맨발로 의식적 보행을 하며 내 마음속 고요한 공간을 여행한다. 그 걸음을 통해 번뇌는 기회로 변형되고, 고난을 축복으로 삼는 시간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다른 누구의 답이 아닌 오직 나의 답과 지혜가 발현된다. 그 걸음이 끝났을 때, 걷기 이전과 다른 내가 되어 또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매 호흡마다 새로운 내가 된다” 하신 스승들의 가르침처럼, 매 호흡 정도까지는 못 되지만 그 마음가짐은 오늘도 걸음 속에서 체화된다. 사상체계와 마음공부를 통해 이상화시킨 나 자신에 대한 환희보다, 고작 이런 나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내가 나일 수 있게 하는 시선에 온전히 집중한다.
여느 때와 같이 반려견들과 옹기종기 앉아 해안가의 물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 4년간의 도전과 성장 여정이 수평선 위에 마치 영화 장면처럼 오버랩되었다.
4년 전이다. 멘털코칭과 내면아이 카운셀러로 활동하면서 1년간의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던 나는, ‘명상/힐링 플랫폼’이라는 비즈니스모델로 스타트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스타트업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며 고속 성장을 지향하는 조직이다. 여러 이해관계자의 이익과 직결되기에, 모든 것을 수치상으로 환산하여 빠른 성과를 만들어야 했다. 당시 코로나가 시작되던 시기라 힐링 산업 종사자들의 온라인 진출에 대한 수요는 급증했고, 코로나로 인한 심리 문제 해결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희망차게 출발했지만, 시작부터 어려움은 찾아왔다. 영성과 힐링, 요가, 명상 등 정신세계의 의미와 추상적 표현을 수치화하고 계량화하여 오직 시장의 논리로 말하는 리그의 자금을 끌어온다? 그리고 고속 성장을 시킨다? 그것은 느림과 기다림, 멈춤과 고요함을 추구하던 지난 나의 삶과는 180도 다른 삶이었다. 기다림을 전달하기 위해 기다려 줄 수 없다는 것은, 고요함을 전달하기 위해 고상할 수 없다는 것은 그동안 쌓아 올린 영성의 탑이 날마다 무너지는 경험이었다. 그렇게 시작부터 자의식이 모래알처럼 해체되는 과정을 거쳤다. (훗날 알았지만 ‘균형’이라는 것은, 다름의 양 끝을 경험했을 때 가운데로 돌아와 논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다름의 거리가 그 사람의 크기라는 것도.)
선택하고 책임지는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살았기에, 창업에 뛰어든 것도 나의 선택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파보면 그 선택을 하게 하는 삶의 흐름이 있고 그것에 항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흐름은 그렇게 나를 CEO의 자리에 앉혀놨고, 나는 그 선택에 책임을 지고 앞으로 나아갔다. 0원으로 시작한 회사는 오직 사업기획과 설득의 과정을 통해 9억 원의 초기자금을 조달했다. 총 106명의 힐링 업계 전문가를 한곳에 모은 플랫폼을 구축했고, 두 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직원 16명과 인턴 실습을 포함한 팀원 24명으로 불어났다. 시애틀에 미국법인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보급하며 북미 시장에도 노크했다. 아이디어에 불과했던 씨앗 생각을 심상화하고 구체화하고 선언했다. 그리고 돈과 사람이라는 에너지가 붙어 기업의 형태를 갖춰가는 과정은 연금술 그 자체였다. 처음 경험하는 압도적 분량의 일들을 처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옆머리가 하얗게 셌다.
그러나 다사다난 끝에 플랫폼은 멈춰 섰고, 거대한 뒤처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팀과 사업을 해체하면서 깊은 절망과 고독도 느꼈다. 그래도 큰 상처가 남지 않은 이유는 그동안 훈련해온 마음 근육이 위기의 순간에 서포트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물러서지 않았다. 최초의 목표치가 있었고 손실도 있었기에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돈이 되는 건 무조건 했고, 플랫폼 구축 경력을 앞세워 웰니스 업체들의 온라인 전환 사업에 재도전했다. 결국 처음 목표했던 월 1억 매출을 달성했다. 사업 외적으로 들어오던 창업 멘털케어 강의와 CEO를 대상으로 한 멘털코칭 서비스도 열심히 했다. 뭔가 그럴싸한 그림이 그려지나 했다.
나는 참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나마 잘 훈련된 것이 있다. 무언가 잘 된다고 생각될 때, 혹은 잘 안 된다고 생각할 때 기도하는 습관이다. “당신께서는 제가 무엇을 알기를 원하나이까?”라고 묻고, 그 응답에 내 생각을 내려놓고 따르는 것이다.
때마침 하나의 연락을 받았다. 멘털코칭을 해드렸던 창업기업의 대표자였다. 코칭 이후에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힘을 얻어 나아가고 있다고. 그래서 CEO를 대상으로 꾸준히 제공해왔던 멘털코칭의 후기들과 쌓인 메시지들을 샅샅이 찾아보았다. 그동안 정신없이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가슴으로 쓴 메시지들을 스킵했던 것이다. 사업 실패의 아픔을 극복한 이야기, 도전의 불안 속에 용기를 얻은 이야기와 조직이 함께 회복된 이야기, 그리고 약간은 민망할 정도로 극적인 변화를 언급하며 어려움을 극복한 사례까지. 그렇다. 기도의 응답이었다. 지난 4년간 여러 시행착오와 도전을 거치며 펼쳐놓은 것 중에서 "단 하나의 칼을 쥔다면?"이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머리의 계산을 내려놓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만 보면 됐으니까. 그렇게 ‘CEO 멘털케어’라는 칼 한 자루만 남겼다.
긴 여행을 다녀온 듯하다. 결혼과 창업은 나 자신을 직면하기에 가장 좋은 수행이다. 무엇을 더 가져야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비워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수평선 위로 펼쳐졌던 영화 필름의 영상이 사라지고,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간다.
요즘 나는 이미 CEO거나 CEO가 되고 싶으신 분들의 멘털을 케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멘털코칭을 제공하기 전엔 반드시 명상하여 나를 비운다. 그리고 평소에도 자연 친화적인 삶을 통해 최대한 영적 순수의 상태를 유지한다. 케어하는 기업을 공부하고 사업구조 속에서 리더에게 예상되는 어려움을 미리 체크한다. 코칭을 통해 깊은 지점을 알게 되면 고객을 위한 최선의 답이 나를 통해 전해지도록 기도한다. 또한 나를 위한 전담 코치와 힐러, 컨설턴트와 상담가를 배치해두어 나의 경영 멘털도 꾸준히 관리한다. 케어를 받는 분들이 처음에 하나같이 하는 말은, “이 문제가 그것 때문이었다니”이다. 자금, 고용, 불안, 한계, 동업, 실패, 번아웃 등 많은 사업적 어려움도 결국 숨겨진 내면의 패턴이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당장의 해결을 위해 ‘How to’를 찾아다니지만, 내면의 본질적인 접근 없이는 다시 반복된다.
우리, “성인이 되면, 마음공부에 목숨을 걸어라”라는 선현의 가르침을 되새기자. 사실 CEO만 리더가 아니라 우리는 모두 자기 삶의 리더이다. 또한 모든 경영은 자기 경영에서 시작된다. 그동안 다양한 도전을 하며 살아왔던 것은 오직 내 안의 영적 존재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험하기 위해 이곳에 왔고, 나만의 인생 목적을 찾아 오직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 그것이 내가 아는 영성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