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이 싱글이든, 연애 중이든, 기혼자이든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은 크든 작든 가슴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관계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을 위한 내면치유 서적은 없을까? 서점을 샅샅이 뒤져봤지만 국내에서는 그런 책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아쉬운 마음을 동력으로 저는 《나는 내 운명》을 기획하고 옮겼습니다. 제가 관계 문제로 겪었던 시행착오와 고통을 다른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덜 겪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요. 그리고 부끄럽지만, 여러분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제가 겪었던 시행착오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취직과 거의 동시에 자취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하던 집에서 떨어져 나오니 가뜩이나 친구도 없는 저는 외로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심했습니다. 그래서 외로움을 덜어줄 애인이 생기면 좋겠다고 항상 바랐었지요. 이런 갈망은 집착 정도로 심해져서, 눈을 뜨면 “연애를 못 해서 슬프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일과 중에도 순간순간 “애인이 없어서 불행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잠을 자기 전에도 “외로워서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지요.
한편, 업무 특성상 저는 온갖 자기계발서들을 접할 일이 많았습니다. 덕분에 ‘끌어당김의 법칙’이나 내면아이 치유, 마음공부 등의 개념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유튜브에 ‘외로울 때 하는 명상’ 같은 키워드를 검색해서 음성 가이드를 따라 명상도 해보고, 거울명상도 해보고, 이미 애인이 생긴 듯 생각하고 행동하는 등 별별 방법들을 모두 따라 해보았지요.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저의 외로움에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 더 정확히 말하면 이것들의 핵심을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전히 사랑에 집착하고 있던 저는 사랑에 특화된 끌어당김의 법칙을 알려주는 서적이 없을까 하고 이런저런 외서를 살피던 중 류 시노하라(Ryuu Shinohara)의 《사랑을 현실화하는 마법(The Magic of Manifesting Love)》(안타깝게도 이 책은 류가 타 언어로의 번역을 원하지 않아 출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의 핵심은 간단했습니다.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것은 애인이 아니다. 애인이 생긴 그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기분’이다. 그러니 왜 애인이라는 ‘외적인 상황’을 바꾸려 애를 쓰는가? 당신이 원하는 것이 ‘기분’이라면 그것은 당신 안에서 자체적으로 얼마든지 만들어내고 또 느낄 수 있다. 더 이상 외적인 상황이 어떻든 당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말이다.”
위의 사실을 단순히 머리로만 이해한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이 깨닫게 된 저는 마치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난 몇 년간 그렇게 괴로워할 이유가 없었음을 크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 그때 이 책이 준 핵심적인 깨달음은 지금까지도 제 마음속 소중한 보물로 남아 있습니다.
이후로 “애인이 없어서 불행하다” 등의 생각이 습관적으로 올라올 때면 저는 “맞다, 내가 원하는 건 그 상황이 주는 ‘기분’이지. 난 내가 갈망하는 그 기분을 나 자신에게 스스로 줄 수 있어” 하면서 사랑받는 기분, 더 이상 외롭지 않은 기분, 같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기쁜 마음 등을 느껴주었습니다. 이제 외적 상황은 제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집착이 사라지니 사는 것도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마침 이 시기는 제가 바딤 젤란드의
《타프티가 말해주지 않은 것》을 편집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책에서는 ‘땋은머리 기법’이라는 것을 언급하면서, 특정 지점에 의식을 집중한 후 원하는 장면을 상상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얘기합니다. 저는 큰 집착 없이 재미로 “원하는 애인 상을 한번 상상해볼까” 하고 이를 시도해보았지요.
“우리 둘은 해 질 녘에 드라이브를 하며 제프 버클리(Jeff Buckley)의 〈Calling you〉를 감상한다. 둘 사이에 오고 가는 말은 없지만 우리는 딱히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어떤 기분인지를 잘 알 만큼 마음이 잘 통하는 사이다….” 이것이 제가 그 당시 상상했던 미래의 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심상은 곧 제 머릿속에서 잊혀지고, 저는 다시 일상을 살아갔습니다.
류 시노하라의 책에서 큰 깨달음을 얻고 스스로에게 원하는 ‘기분’을 선사하며 살아간 지 1~2주가 지났을 때, 마침내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사랑을 위해(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3년이라는 시간 동안에는 현실에 아무 변화가 없었는데 고작 마음가짐 하나 달리하자 한 달도 안 되어 원하는 현실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어느 날, 해 질 무렵 남자친구와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남자친구의 핸드폰과 연결된 차 스피커에서는 놀랍게도 제프 버클리의 〈Calling you〉가 흘러나왔습니다. ― 알고 보니 그 역시 이 가수를 좋아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어떤 독자님들은 믿지 않으실 테지만) 우리는 정말로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을 때도 그랬습니다. 혼자만의 착각이 아닌가 하여 몇 시경에 어떠한 기분을 느꼈는지 물어보면 남자친구는 제가 느꼈던 것과 똑같은 답을 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저는 그토록 원했던 애인을 사귀었습니다. 그것도 제가 심상화하며 그렸던 모습과 완벽히 일치하는 그런 애인을 말입니다. 여기서 “둘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끝” 하면 좋으련만, 관계라는 것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습니다.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리 사이에는 불화가 잦았습니다. 자세히 보면 그 불화의 중심에는 저의 외로움이 있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저를 괴롭혀오던, 애인이 생기면 없어질 거라 기대했던 바로 그 외로움 말입니다.
남자친구가 바빠서 데이트를 자주 하지 못할 때면 저는 외로움을 느꼈고, 또 버림받은 느낌을 느꼈습니다. 겉으로는 “바쁘니까 어쩔 수 없지. 이해하자” 하며 억눌렀던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들은 예상치 못하게 불쑥 튀어나오며 우리 사이의 불화를 유발했습니다. 이럴 때 100퍼센트 솔직한 저의 밑바닥 마음은 이랬습니다. “뭐야, 외롭잖아?! 상대방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잘 대해주는 것도 연인의 역할 아니야? 아, 짜증 나.” 물론, 한눈에 봐도 잘못된 신념입니다. 하지만 이 신념은 의식하기 쉽지 않은 영역에 숨겨져 있어서 저는 진짜 제 마음이 뭔지 그동안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한번 저의 가감 없는 속마음을 인식하고 또 인정하고 나니, 이러한 신념이 연애 전에 가지고 있었던 “남자친구가 생기면 나의 모든 외로움은 사라질 것이다”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기인한 신념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외부 현실을 내가 원하는 대로 창조하는 법을 알게 되고 또 그렇게 해서 실제로 그런 현실 속에 살아도, 저는 지긋지긋한 외로움과 그것에서 파생된 잘못된 신념들 때문에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외부 현실이 바뀌든 바뀌지 않든 외로움이라는 제 불행의 원인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주춤하고 있을 때, 세상은 책과 유튜브 영상, 마음공부 안내자들과의 만남 등 여러 경로를 통해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고 또 치유하는 법을 제게 친절히 알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느끼기 싫은 느낌에서 달아나지도, 그 느낌을 꾸짖지도 말고 그 안에 가만히 머물러보세요”라는 말을 했습니다.
또다시 남자친구가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외로움이 찾아왔던 어느 날, 저는 습관처럼 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 또 외로워? 그만 좀 외로워라. 이런 느낌은 이제 신물이 나.” 그 순간, 저는 지난 몇 년간 외로움으로 그토록 괴로워했으면서도 정작 ‘외로움으로 고통받는 나’는 외롭게 방치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그 느낌 안으로 들어가 가만히 외로움을 음미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외로움을 물리치려고 전쟁을 벌이기만 했지 한 번도 이 느낌과 평화롭게 공존해본 적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처음으로 내면아이가 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나는 내 말을 들어줄 사람 딱 한 명, 너만 있으면 됐던 거였어.” 아…. 그때의 오묘한 감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지금껏 신경 써주지 못했던 그 아이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부끄럽고, 또 여태 잘 버텨준 그 아이가 대견했습니다.
내면아이의 이 한마디 말은 지금까지 있었던 그 모든 일들을 명확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저는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을 외부에서 찾고 있었습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을 통해 외부에서 그런 누군가를 찾았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24시간 내내 저의 모든 감정과 생각과 말을 들어주고 또 공감해주는 것은 불가능한 꿈이었습니다. 그것은 나만이 해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내면아이에게 “이제 네 말을 귀 기울여 들을게. 네게서 도망가지 않고 네 옆에 머무를게”라는 굳은 약속을 해주었습니다.
이 경험 후 저는 외로움에서 크게 해방되었고, 더 이상 잘못된 신념이 관계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저를 조종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관계 패턴이 사라진 것입니다. 물론, 이것으로 저의 치유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나는 내 운명》의 저자인 셸리나의 말처럼 100퍼센트 완벽한 치유란 이 세상에 없으니까요. 삶 속에서 어떤 한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또 치유해나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지금 이 순간 치유를 선택할 권한이 있습니다. 설령 과거에 거지 같은 연애만 해왔더라도, 배우자와 하루가 멀다고 싸우더라도, 혹은 평생 연애 한 번 못 해봤더라도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라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 안에는 사랑받고, 수용되기를 기다리는 내면아이들이 있습니다. 이 내면아이들은 자신을 알아주지 않으면 인간관계에서 불쑥 튀어나와 문제를 유발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창조해 자기 존재를 알립니다. 이런 상황은 “나 좀 바라봐줘, 나 좀 사랑해줘” 하는 내면아이들의 외침과도 같습니다.
여러분이 이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 수 있기를, 지금껏 숨기고 거부해왔던 나 자신의 조각조각들을 다시 통합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찾고자 했던 바로 그것을 찾게 되기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