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아이 치유 과정 중 요즘 가장 집중하고 있는 파트는 수치심에 관한 파트다. 수치심이란 뭘까? 수치심이란 자기 존재에 대한 감정을 부정적으로 느끼는, 즉 자신의 존재 자체를 문제시해버리는 감정을 말한다. 개인적으로 내면아이 치유 중 가장 깊숙하게 바라봐야 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간 많은 감정 해소를 하다 보니 그동안 표출되지 않았던 감정과 생각들이 하나씩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점점 더 깊은 무의식에 있던, 가장 깊은 곳에 억압해 놓았던 감정과 기억들도 둥둥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마주하게 된 것이 바로 ‘성적 수치심’이다. 아주 어둡고 비밀스러운 곳에 존재하고 있던 나의 성적 수치심.
내가 마주한 성적 수치심
내가 마주한 성적 수치심은 여성으로서 나의 몸, 그리고 내가 여자인 것 대한 그 자체와 여성의 역할에 관한 믿음이었다. 나는 나의 몸, 나의 역할을 혐오하고 있었다. 이 믿음은 내가 살아온 경험에서 온 생각과 감정으로 만들어낸 믿음이었는데, 결국 이 믿음이 나의 핵심 믿음이 되어서 나의 존재와 가치, 그리고 나의 현실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내가 가진 ‘핵심 믿음’은 현실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 현실을 경험하게 되니 우리는 그걸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면 그 믿음은 더 강화될 뿐이다. 그럼 도대체 이 믿음은 어디에서 온 걸까? 나는 왜 이렇게 된 걸까? 그간 해오던 과정대로 이 믿음의 뿌리를 찾기로 결심했다.
나의 모든 기억을 살폈다. 나는 내가 싫었다. 특히 나의 성 역할이 여성이라는 사실이. 그 역할이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고 존재 자체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도대체 왜 이런 생각을 가지고 되었을까? 마주하다 보니 그 안에는 우리 엄마가 있었다. 아빠에게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의 무력함과 무기력함. 남성이란 역할에 대항하지 못하는 여성의 역할. 나는 그 모습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가 더 성인이었다면, 내가 더 큰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엄마를 지킬 수 있었을 텐데. 내가 힘이 있다면 저 인간으로부터 구해줄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 기억에서부터 나는 ‘독립적이고 기가 센 여성의 모습이 옳다’라는 분별이 생겼다. 내가 남성보다 우월하고 힘이 세져야 한다는 분별도. 그리고 이 분별을 아주 강력하게 믿기 시작했다. 나아가 ‘왜 이 상황을 바꾸지 않지? 왜 더 공격적으로 할 순 없는 거지?’라며 그 모든 상황들에 격노하고 있었고 내가 바꿀 수 없는 상황들에 대해 극심한 절망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나의 무기력함에, 나에 무능함에 대해서 말이다.
내 인생에서 나약하고 무능한 나는, 남자들에게 돌봄 받고 보호받는 나는, 내 인생에서 그런 ‘나는’ 있을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다가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남성우월주의 덕분에 생긴 강력한 분노와 반발심은 반대로 ‘여성이 더 우월할 수 있음을 보여주겠다’라는 믿음을 강력하게 형성했다. 세상에 있는 모든 남성보다 잘나야 하기 때문에, 나는 힘과 성취, 명예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제 나의 가정에서 남성의 역할을 맡고 있는 남자들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힘이 없는 존재였기 때문에 (소위 말해 가정을 이끄는 리더 역할, 경제적 활동이나 가족을 돌보는 일 등) 나는 역으로 결국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큰소리나 치는 한심하고 역겨운 종족이라는 믿음이 더 강하게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 믿음들은 다시 수치심으로 돌아왔다.
또 하나의 발견, 성적 욕구에 대한 수치심
나는 내가 느끼는 성적 욕구에 강한 역겨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특히 이 욕구는 남성을 필요로 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더 심한 구역감과 혐오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남자가 필요한 존재가 아닌데 관계를 맺으려면 남자가 필요하니까. 진짜 깊은 무의식 속에 있던 생각이었다. 이렇게 욕구를 누르고 있으니 신체시스템은 억누른 에너지를 분출할 타이밍만을 노리고 있었고, 의식적이지 않은 상태가 되었을 때는 그 모든 욕구가 폭발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 역시 수치심 적립 코스.
여성 에너지를 누르고 남성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쓰다
‘성취를 해야 해, 힘을 가져야 해, 성공을 해야 해, 약해지면 안 돼, 내가 무너지는 그 순간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고통스러워질 거야.’ 스스로를 이렇게 계속 몰아세웠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여성성은 수치스러워하고 남성 에너지만 존재하는 사람처럼 살기 시작했다.
잠깐 얘기를 해보자면 우리 안에는 남성 역할, 여성 역할 혹은 남성 에너지와 여성 에너지가 함께 존재한다. 그것들은 밸런스를 이룬다. 빛과 어둠이 있듯이 남성과 여성도 결국에는 전체에서 분리된 것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결국 하나다. 다만 에너지나 역할 밸런스를 잘 맞춰서 살면 된다. 아예 없어야 할 필요도, 그렇다고 강하게 있어야 할 필요도 없다. 자연스럽게 조화가 되면 된다.
그러나 조화롭지 않은 에너지는 언젠간 탈이 난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반복들이 지겨워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는 내 마음과 몸을 쓸모없고 가치 없는 존재라고 믿고 방치하기 시작했다. 나의 수치심이 내 존재 자체가 되게끔 선택한 것이다. 그런 나를 너무나도 수치스러워하면서도 반대로 나는 이런 일을 당해도 되고, 이런 취급을 받아도 되는 아이라고 당연시 여겼다. 그 마음이 힘들었다. 나는 나의 귀하고 성스러운 에너지들을 억압하고 수치스러워하며 긴 시간을 보내왔다. 나의 모든 걸 부정하며.
과정의 여정
이 지겨운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 끝에 나는 수치심을 마주했고 이 모든 진실을 마주했다. 마주하고 보니 내가 아무리 그렇게 간절하게 빌고 빌어도 왜 해결이 안 되었는지, 왜 할 수 없었는지, 왜 이뤄지지 않았는지 이제야 알겠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그럴 자격이 없어서 갖지 못한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단지 나는 봤어야 했다. 나의 내면을. 내가 지독히도 괴로워했던 그 현실들은 정말 내면의 반영일 뿐이었다. 알고 나니 나에게 온 모든 일들에 감사하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한번 수치심에 관해 생각해보셨으면 좋겠다. 마주하기 싫은 나의 모습을 용기 내어 마주할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의 변화는 시작된다는 것을 꼭 전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