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의 전부인 듯 집중하는 까만 눈동자,
마주 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함박웃음을 짓는 존재.
‘아. 이게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조건 없는 사랑이구나!’
조건 없는 사랑이 무엇인지 경험해보고 싶다고 말할 때, 사람들은 아이를 낳으면 알게 될 거라고 답했다. 아이에게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거라고.
그런데 막상 내가 육아하며 경험한 조건 없는 사랑은 나에게서 아이로 흐르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가 나에게 먼저 주는 것이었다.
온 우주의 마음을 담아 나를 바라보는 듯한 아기의 눈빛! 그 눈빛은 내가 그 어떤 존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존재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그 생경하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에 가만히 머물렀다. 작고 통통한 두 손으로 물건을 만지작거리는 소리, 집중하느라 뾰족 나온 작은 입, 방금 발견한 세상에 감탄하며 “오오! 아!” 하고 무언가 표현하고 싶어하는 아이의 음성.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장면은 선명해진다. 그 순간, 나라는 경계는 점차 희미해진다. 시끄럽게 떠들던 마음속 소리들은 잦아들고, 내세우고 있던 나라는 존재도 투명해진다. 아이의 영혼과 공명하고 있음이 느껴지고, 현재에 온전히 머무른다는 찰나의 감각을 느낀다. 고요하고 빛이 나는 순간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며 지금에 온전히 머무르는 감각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하면서, 육아의 과정이 마치 명상과 같다고 느껴졌다.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지금 온전히 머무르는 순간. 평온하고, 고요하고, 자유로웠다. 군더더기 없이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있는 소중한 아이에게 집중하고 공명하기를 선택한다. 나는 이것을 ‘육아 명상’이라고 이름 지었다.
아이가 몰입하는 것을 관찰하고, 곁에 있는 나를 관찰하고, 마음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관찰했다. 아이에게 말을 건넬 때는, 성대와 입을 통해 나온 음성이 귀를 타고 들어가는 감각을 가만히 느껴보았다. 그러다 보면 말도 행동도 여유로웠다. 아이와 뭘 하고 놀아줘야 하나, 라며 특별한 것을 자아내려 하지 않아도 평온하고 따뜻했다.
물론 마음이 분주해지고,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버겁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울고, 보채고, 매달리는 아이들을 보며, 평소 같으면 안아주고 다독였을 상황인데도 이런 날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았다. 힘들어도 아이들 곁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기에, 터질 것 같은 마음의 소리, 불편한 감정들을 꾹꾹 눌러 담았다. 아이들에게 쏟아부을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이다. 한없이 우울해서 무기력해 있다가, 남은 힘을 긁어모아 다시 의지를 다지면 펼쳐진 상황이 엉망진창인 것 같아 조급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조급함과 화의 끝은 나에 대한 공격과 비난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엄마가 되길 간절히 바랐는데. 너 뭐 하는 거야? 이거밖에 못 해?’ 시리도록 날카로운 말을 마음에서 끝없이 되풀이했다.
미처 흘려보내지 못한 생각과 감정에 영혼이 잠식당한 느낌. ‘이런 상태는 언제 마주하게 되는 걸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내 생활 패턴을 관찰해본 결과, 공통점이 있었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거나, 자극적인 음식으로 배를 채우거나, 이어폰을 끼고 의미 없는 소리를 듣고 있거나,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을 때 무시하는 순간들이 며칠 쌓이면 이런 상태에 다다랐다. 결국 몸과 마음 돌보기를 소홀히 하면 나타나는 상황이었다. 그러면 몸은 아이들 곁에 있지만, 마음이 시끄러워 아이들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정신이 멍하거나 날이 서 있는 내 상태를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엄마인 나의 컨디션을 예민하게 느꼈다.
몇 번의 경험 끝에, 평온한 육아를 위한 리추얼을 만들었다. 새벽, 내적 침묵을 위한 시간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내 안의 목소리를 독대하기 위해 좋아하는 조명을 켜고 마음에서 들리는 소리를 천천히 관찰했다. 그러다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노트에 적었다. 이 시간을 며칠 건너뛰면, 복잡하게 뒤섞인 시끄러운 소리가 올라오는 것을 한참 관찰해야 했다.
새벽 리추얼 끝엔 마음이 고요해졌고, 고요함 속에서 빛이 새어나옴을 느꼈다. 깊은 내면과 연결된 감각은 나라고 규정짓는 경계를 희미하게 했다. 이런 고요함은 부모로서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분주할 필요가 없음을 알려주었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 아침을 맞이한 아이에게 “잘 잤어? 보고 싶었어!”라며 사랑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안아주는 것, 식탁에 둘러앉아 아침을 함께 먹는 것, 아이가 입을 오므렸다 폈다 정성스레 표현하는 말에 귀 기울이는 것, 옷 입는 걸 곁에서 지켜보다 아이를 간지럽히며 같이 뒹굴뒹굴하는 것과 같은 사소하게 느껴지는 순간 오롯이 함께 머무르는 것. 이런 순간마다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조건 없는 사랑을 느끼며, 현존의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부모에게 받기를 원했던 사랑을, 아이와 함께하며 비로소 느끼는 충만한 일상. 그 안에서 어린 시절 상처받았던 기억들도 치유되어 간다. 부모로서의 삶은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한 영적 경험이자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리게 한 소중한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