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띵을 준비하면서 열어본 ‘나의 소울 일지’에 짧은 편지가 와 있었어요. ‘엉뚱발랄어디갔니’라는, 이름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구독자분이 보내주셨는데요. 저에겐 큰 메시지로 다가왔고,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나의 소울 일지’ 코너에 소개하기엔 너무 아쉬웠습니다. 오늘은 이 편지를 메인 글 삼아 제 이야기도 덧붙여보려고 합니다.
마음공부라는 단어가 아직도 익숙하지 않지만, 그래도 몇 년을 노력했다면 했는데 늘 제자리걸음인 거 같아서 마음이 조급할 때도, 답답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어쩌면 이 어정쩡함이 내가 평생을 지탱해나가야 하는 무게인 동시에 자유로운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때때로 작은 사건에서 마음을 울리는 깨달음을 얻고 자유로워지는 듯하지만, 또 전체를 보면 내가 버텨내야 하는 무게들이 있다는... 자유롭기를, 평온하기를 너무나 간절히 원하고, 또 온전한 사랑을 주고받고 싶지만, 사실은 그냥 어떤 중간의 상태를 버티고 받아들이는 것. 제자리처럼 느껴져도 그 상태에서 이 길을 끝까지 가보는 것. 클라이맥스라는 건 허상일 수 있다는 것. 요즘에는 이런 생각들이 드네요. 너무 회의적인가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답니다. 소울띵 구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해지네요.
이 편지에 마음이 한참 머물렀습니다. 제 가슴은 그 이유를 너무 잘 알고 있는 느낌이었지만 말로 길어올리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수많은 문장을 썼다 지우고, 깜박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몸 안에서 부자연스럽게 턱턱 걸리는 움직임들을 느꼈습니다.
‘어정쩡한, 중간의 상태를 버티고 받아들이며 이 길을 끝까지 가보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너무 아름답고 중요하다고 느끼면서도, ‘어정쩡한 내 모습’은 절대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저항의 끝자락에 다다르니, 저는 제가 얼마나 ‘과정’이라는 가치를 등한시하고 있는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과정을 지나는 내 모습은 비루하고 하찮게 여기면서, 다른 이들이 겪어내는 수많은 굴곡의 과정은 아름답다 하는 건 결국 거짓을 말하는 겁니다. 내가 나를 보는 시선과 세상을 보는 시선은 똑같으니까요. 조급함과 답답함, 혼란의 터널을 지나온 끝에 마주한 자신의 진실을 꺼내어 보여준 마음을 거짓으로 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까지 소울띵은 (소울레터 시절까지 포함해서) 50통의 편지를 발행했어요. ‘생활밀착형 영성 이야기’라는 주제로 뉴스레터를 시작할 때, 의식 성장을 위해 내면을 탐구하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바람이 전부였습니다. 편지가 쌓일수록 ‘좀더 근사한 이야기, 자신의 깨달음을 얻고 마음이 정돈된 이야기를 보내드려야 좋아하시지 않을까?’, ‘아무 발전이 없는 것 같고, 영성, 마음공부에 대한 텍스트가 버겁게 느껴지기도 하는 내가 이런 레터를 기획하는 게 맞을까?’ 하는 마음에 짓눌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소울띵에서 다루는 모든 이야기는 ‘미완’일 수밖에 없는데, 어느 순간 저는 ‘완성’된 이야기만 가치 있다 여기고 있었음을 엉뚱발랄어디갔니 님의 편지를 보고 알았습니다.
무언가를 이루고, 변화를 경험하고, 자유롭고, 깨어나고. 이 모든 것이 ‘완성’에 해당한다는 건 가장 큰 착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할 일은 각자가 품고 있는 발심(發心)에 기대어 어정쩡한 나를 버티고, 그 어정쩡한 내가 만드는 하루하루를 귀하게 여기는 일일 겁니다. 사실 이것이 전부이고, 소울띵에서 나눌 수 있는 고유한 이야기라는 것을 놓치고 있었네요.
편지를 쓰다 보니 ‘이 편지를 보는 분들은 전혀 그런 생각 안 하는데 나만 진지한가?’ 싶기도 하네요. 하지만 레터를 보내드리면서 계속 마음에 걸려 있던 지점을 구독자분이 보내주신 편지 덕분에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생각했어요. ‘앞으로 소울띵에서 ’중간 상태를 버티는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작은 완성들을 이뤄가는 미완의 여정이 한 문장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로 탄생하는 공간이 소울띵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삶에서 실패란 건 없음을, 어떤 내 모습도 못나거나 부족하지 않았음을 서로에게 밝혀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엉뚱발랄어디갔니 님이 말씀하신 ‘어정쩡한 상태가 주는 자유’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엉뚱발랄어디갔니 님의 편지가 님에겐 어떻게 다가갔을지, 저도 궁금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편안하게 답장해주시겠어요? 다음 소울띵에서 함께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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